전생의 어머니와 양의 부모 밑에서

경북 경주시 동쪽 토함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22년인 535년에 건설되었으며, 그 뒤 752년(신라 경덕왕 11년)에 거의 다시 짓다시피한 세계적인 걸작 건축물이다. 이 절은 임진 왜란 때 완전히 불타 없어졌으나, 조선 영조 때 다시 세웠다. 그러나 석조물은 대부분 창건 당시의 것이다.

불국사에는 국보 20호인 다보탑, 국보 21호인 삼층 석탑 외에 역시 국보인 청운교, 백운교 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있어, 근처 일대가 사적 및 명승지 제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난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정부 보조로 옛날 모습을 되살려, 불국사는 이제 과거의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불국사를 두 번째로 손볼 때, 그 일을 맡아 모든 뒷바라지를 한 사람은 김 대성이다.

김 대성은 귀족 집안에 태어나 순조롭게 벼슬길에 올라, 나중에는 그의 아버지가 지낸 벼슬인 중시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51세에 벼슬에서 물러난 김 대성은, 그 후 불국사와 석굴암 공사를 총지휘하는 한편석불사라는 절을 짓기도 했다. 불국사 공사는 일이 워낙 방대하여 그의 나이 75세가 되어 숨을 거둘 때까지 완공을 보지 못해, 그가 죽은 후 끝손질은 나라에서 도맡았다. 그가 왜 이렇게 절짓는 일에 그의 일생을 걸었을까?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부모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지나간 시대의 문화가 어떠했는가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남긴 예술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되고 평가받는 법이다. 한 시대에 뛰어난 예술 작품이 있다는 것은 그런 위대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빛나는 시대는 위대한 인물을 낳고, 위대한 인물은 빛나는 시대를 창조하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 전성 시대의 경주는 그 가호 수가 17만 8천 9백 36호나 되었다고 한다. 당시 경주에는 절과 탑이 많았는데, 어떤 역사 책에서는 그것을 '절은 별같이 총총하고, 탑은 마치 기러기떼가 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바로 그 무렵 우리의 김 대성은 서기 700년에 경주 서쪽 모량리에서 태어났다. 모량리는 신라가 처음으로 나라를 세울 때 있었던 여섯 마을의 하나로서, 오늘날에도 대구에서 경주로 들어서자면 그 어귀에 기차 정거장 이름인 '모량'으로 남아 있다. 모량리는 따로 부운촌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김 대성의 출생은 좀 신기하여, 그에게는 전생의 부모와 이승의 부모가 있었다.

신라 제 31대 임금인 신문왕 때, 모량리에 경조라고 하는 한 가난한 부인이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머리가 크고 이마가 넓어 마치 성과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큰성이라는 뜻에서 그를 대성이라 불렀다.

경조 부인은 아들 대성과 함께 부지런히 일하며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갔으나, 손바닥 만한 밭뙈기 하나 없는 처지라 하루 세 끼 조차 제대로 차려 먹기 힘들었다. 어머니의 고생을 보다못한 대성은 마을에서 부자로 소문나 있는 복안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기로 결심했다. 경조 부인은 어린 아들이 머슴으로 간다는 게 보기에 딱했으나, 달리 수가 없었으므로 허락을 했다.

"네가 이왕 남의 집 일을 해주기로 작정을 했으며, 주인 눈치나 보며 적당히 지낼 생각 말고 네 일처럼 정성을 다해 보살피도록 하여라."

대성은 어머니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 주인이 탄복을 할 정도로 부지런히, 그리고 억척으로 일을 했다. 반 년쯤 지나자 주인 복안은 대성의 성실함과 알뜰함을 높이 사 한 달에 얼마씩 주기로 한 품삯 말고도 따로 밭 몇 이랑을 주며 그것으로 살림 밑천을 삼도록 했다.

대성은 너무나 고마워 세 번, 네 번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는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 놀라지 마세요. 우리도 이젠 우리 밭이 생겼어요."

경조 부인은 아들이 밑도 끝도 없이 고함을 지르며 좋아 날뛰므로 영문을 몰라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긴 게로구나."

"좋은 일이냐구요? 그럼요. 좋은 일이다 마다요. 주인이 제게 품삯 말고 덤으로 밭 몇 이랑을 주며 일구어 쓰랍니다. 이젠 우리도 우리의 땅을 가지게 되었다니까요."

'뭐라고? 그렇게 고마울 데가 있나. 주인도 복받을 분이지만, 그게 다 네가 알뜰살뜰하게 그 집 살림을 돌봐 준 덕분이다. 세상

일은 이렇게 한 만큼 보답이 돌아오게 마련이란다."

"저는 그저 어머니가 시킨 대로 했을 뿐이에요."

"이그, 불쌍하고 장한 내 자식!"

남이 보기에는 하찮은 밭뙈기일지도 모르지만, 대성 모자로서는 처음으로 가져 보는재산이었다. 그들 모자는 자신들의 땅에 철따라 보리, 콩, 수수, 채소 등을 가꾸어 남보란 듯이 살아갈 꿈에 부풀어, 그 날 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 다음 날이었다. 대성이 마구간을 청소하고 있는데, 한 스님이 사립문 앞에 이르러 주인 복안을 찾았다. 그 스님은 대성도 낯이 익은 홍륜사의 점개라는 노승이었다. 불교를 열심히 신봉하는 주인 복안은 점개 스님을 보자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반갑게 맞았다.

"스님께서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이번에 홍륜사에 큰 법회를 엽니다. 시주하시면 다른 어느 때 보다 큰 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알았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복안은 안으로 들어가더니 베 50필을 내왔다.

"제 정성이니 받아 주십시오."

대성도 놀랐지만 점개 스님조차 눈을 커다랗게 뜨고 복안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베 한두 필만 내놓아도 대단하다 할 판인데, 열 필도 아니고 자그만치 50필을 선뜻 시주하겠다니, 여간한 불심이 아니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참으로 후한 시주이십니다. 하나를 베풀면 그 공덕으로 일만 배의 갚음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댁내 두루 부처님의 보살핌이 있어 큰 복 받으시고 오래오래 사십시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대성은 느끼는 바가 컸다.

'하나를 베풀면 만 배로 갚음을 얻게 된다고? 우리 주인이 대대로 넉넉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저렇게 시주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일거야. 그렇다면 나도 시주를 하여 부처님의 은덕을 받아야지.'

그 날 밤, 대성은 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에게 제 생각을 털어놓았다. 대성의 어머니는 불심이 두터웠기 때문에 아들이 홍륜사 법회에 시주를 하겠다는 것에는 찬성을 했지만 가진 게 없으므로 걱정을 했다. 그러자 대성은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진 게 없다니요. 우린 밭이 있지 않습니까?"

"설마 우리의 전재산인 그걸 시주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왜 아니겠습니까. 어머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를 베풀면 그 공덕으로 만 배를 얻는다는데, 그 밭뙈기인들 아까울 게 없지요. 우리 주인 복안 어른의 베 50필이 제아무리 엄청난 시주라 해도 그건 그 분 재산의 한 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제가 밭을 내놓는다면 저로서는 가진 것 모두를 내놓는 셈입니다. 부처님은 그 차이를 능히 헤아리실 것입니다."

"네가 그리 마음을 굳혔다면 이 어미는 굳이 말릴 생각 없다."

대성은, 이튿날 홍륜사를 찾아가 점개 스님을 뵙고 자신의 결심을 전했다. 점개 스님은 일전에 부자 복안이 베 50필을 선뜻 내놓을 때보다 더 놀라며 연신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뇌었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되어, 그 날 밤 대성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쓰러지더니 그길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경조 부인은 아들의 싸늘한 주검을 끌어안고 대성 통곡을 했다.

"하나를 베풀면 만 배로 갚음을 얻게 된다더니 복은커명 아들을 데려가다니,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대성이 죽던 바로 그 날 밤, 도성에 살고 있는 신라 재상 김 문량의 집에 이상한 일이일어났다.

유난히 별이 빛나던 그 날 밤 하늘에서,

'모량리에 사는 대성을 네 집에 다시 태어나게 할 터이니 잘 키워 큰 일을 하도록 만들지어다.'

하는 신비한 음성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모량리에 사는 대성을 내 집에 보낸다고?"

김 문량은 놀랍고 괴이하여 발 빠른 머슴 하나를 모량리로 보내, 그곳에서 어떤 일이벌어졌나 알아오게 했다. 잰 걸음으로 단숨에 모량리에 다녀온 머슴은 숨을 헐떡이며 본대로 아뢰었다.

"하늘에서 웬 소리가 들리던 바로 그 순간, 그곳에 사는 대성이란 소년 머슴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과연 대성이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더란 말이냐?"

"예, 이마가 성만큼 넓다고 하여 대성이라고 이름을 지은 소년이 분명히 있었습다."

"그거 참, 모를 일이로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지금까지 아기를 갖지 못해 애를 태우던 김 문량의 아내가이 소동이 있었던 그 날 밤 아기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뒤 달이 차서, 김 문량의 아내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모량리의 대성이 생김새와는 달리, 눈썹도 짙고 살갗도 희게 빛나 귀티가 역력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아이는 왼손을 틀어쥔 체 펴지를 못하는 손병신이었다. 그 동안 자식을 얻지 못해 애태우던 것을 생각하면 경사도 예사 경사가 아니지만, 주먹손을 한 배냇병신을 낳았으니 모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머슴들은 저희들끼리 수군거렸다.

"옥에 티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쓰는 거야."

"내가 이 다음에 수수께끼를 낸다면 이렇게 낼 꺼야."

"어떻게?"

"경삿날 초상집 분위기가 뭐냐고."

"맞아, 지금 이 집이 바로 그렇잖아."

그러나 이레째 되는 날, 김 문량의 집안을 뒤덮고 있던 검은 구름은 깨끗이 가시고 말았다. 아기가 스스로 손바닥을 편 것이다.

그런데 아기의 손바닥에는 '대성'이란 두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김 문량은 속으로 생각을 했다.

'이 아이는 모량리의 그 소년이 다시 태어난 게 틀림 없다. 모든게 부처님께서 점지한 것이로구나.'

아내와 상의를 하여 좋다고 대답을 들은 김 문량은, 모량리에 외롭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소년 대성의 어머니 경조 부인을 찾아가 그 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한 다음, 한 집에서 살자고 했다. 가난 보다는 아들을 잃은 슬픔이 더 가슴 아파 늘 한숨에 젖어 지내던 경조 부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여 대성은 전생의 어머니와 이승 부모의 사랑을 한몸에 듬뿍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대성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청년 대성은 글 공부를 게을리하지는 않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사냥을 즐겼다. 그는 점점 사냥에 빠져 눈만 뜨면 머슴들과 함께 앞산, 뒷산을 헤매더니, 나중에는 한번 나가면 아예 보름씩이나 집을 비우기가 일쑤였다.

워낙 늦게, 그것도 별난 곡절 끝에 얻은 자식인지라, 김 문량은 아들이 아무리 빗나가도 크게 꾸지람을 하지 않았다. 걱정을 하던 아내가 아들이 더 비뚤어지기 전에 손을 써야 되지 않겠냐고 하면 남편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괜찮소. 때가 되면 다 깨닫게 될 거요. 나도 청년 때 그랬으니까."

하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사냥에 나갔다가 황소 만한 곰 한 마리를 잡는 데 성공한 대성은, 그 날 밤 꿈에 죽은 곰의 혼령을 만났다.

"네 이놈, 대성아. 네가 내 육신을 빼앗아 나로 하여금 이렇게 허공을 헤매게 하였으니, 나도 네 육신을 빼앗아야겠다."

꿈 속의 대성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용서를 빌었다.

"시키는 대로 할 터이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그러면 나의 명복을 비는 뜻에서 절을 하나 지어다오. 약속할 수 있겠느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약속합니다."

꿈에서 깨어난 대성은 이마에 송골송골하게 맺힌 식은땀을 훔쳐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함부로 살생을 일삼았기 때문에 이런 고약한 꿈을 꾼 게로구나.'

자신의 지나친 사냥 버릇을 크게 뉘우친 대성은 그날을 기해 사냥 때 쓰는 활과 화살을 분질러 버리고는 다시는 사냥을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의 아버지 김 문량의 말대로 때가 되자 대성은 스스로 깨달아 마구잡이로 짐승의 생명을 빼앗던 못된 버릇을 고치게 된 것이다.

그 뒤 대성은 곰을 사냥한 자리에 절음 한 채 지어, 장수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버지 문량이 죽자 대성은 아버지의 명복을 비는 절을 올리기로 했다. 마침 그때 나라에서 불국사를 고쳐 지을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다. 겸사겸사 잘 되었다고 생각한 김 대성은 자신이 그 일을 맡겠다고 자원을했다.

김 대성의 나이 이제 51세, 더군다나 바로 1년 전만 해도 일국의 재상인 중시 자리를지낸 김 대성이 아닌가. 나라에서도 잘 되었다며 그에게 중책을 맡겼다.

불국사 공사가 시작된 지 12년인 되던 해 경덕왕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경덕왕의 아들인 새 임금인 혜공왕이 공사를 이어받았다. 어언 김 대성의 나이도 이제 일흔을 넘어가고 있었다.

'세월이 물과 같이 흐른다더니, 내가 벌써 일흔 고비에 접어들었나?'

그는 문득 모량리에 살던 전생의 어머니를 머리에 떠올렸다. 이승 아버지를 위해 불국사 짓는 일을 자원했지만, 전생의 어머니를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다.

'인연이 별나 내가 전생의 어머니와 이승의 부모를 동시에 모시게 되었는데, 이승의 어버이 못지않게 전생의 어머니의 명복도 빌어 드려야 도리가 아닌가.'

그는 자신의 명이 붙어 있는 동안에 전생의 어머니를 위한 절도 올려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김 대성은 바빠졌다. 불국사 공사 감독하는 틈틈이 그는 별도로 또 하나의 절을 짓기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세워진 게 석불사이다.

이승의 부모에게도 효성을 다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김 대성은 그것도 모자라 일흔이 넘은 늙은 나이에도 아랑곳않고 전생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절까지 지어 올렸던 것이다.

[소년소녀 삼강오륜], 배영기 편저/김동리 추천, 민서출판사(1991), pp.11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