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의미 효행이야기
 
효행이야기, 강응정(姜應貞)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7.12.20 조회: 3025

효자(孝子) 강응정(姜應貞)과 '을문이'라는 고기

조선 중엽 가야곡면 산노리에 지체높은 첨지중추 부사의 의(毅)의 둘째 아들 강응정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마저 죽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극진히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나무를 해다 팔아가며 어려운 살림인데도 지성으로 병간호를 하였다.
어느해 겨울 어머니의 병은 더욱 위독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는 갑자기 응정을 부르더니

"얘야 응정아 죽순이 먹고 싶구나" 하시는 것이었다.

철도 아닌데 죽순이 있을리 없었다.

응정은 어떻게 하면 죽순을 구할 수 있을까 하며 밤잠을 설치며 생각해 보았지만 묘안이 있을리 없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이튿날 시루를 열고 보니 죽순이 시루에 가득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응정은 죽순을 가진 양념하여 어머니에게 봉양하였다.

또 어느 겨울이었다.
어머니는 응정이에게 "얘야, 을문이 고기가 먹고 싶구나" 하셨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고기를 이 엄동설한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고자 하는 일념에서 마당에 소반을 갖다 놓고 그 위에 청수를 떠다 놓고서는 정성을 다하여 빌었다.

"하느님, 저의 어머니께서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을문이 고기를 잡수시고 싶답니다. 저에게 을문이 고기를 내려 주십시요" 하면서 얼마 동안을 빌고 있으려니까 갑자기 검은 구름이 일더니 소나기와 함께 물고리 한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응정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인천리 냇가에 나가 고기의 배를 가르고 내장고 함께 알을 냇가에 버렸다. 그후 그알이 부화되어 지금도 을문이 고기는 인천리 냇가에서 부터 논산 저수지 사이 5.6㎞ 안에서만 볼 수 있다 하며 그 지역을 벗어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 고기를 "강효자 고기"라고도 부르고 있다.

어머니의 병이 나은 후에도 응정의 효성은 지극하였다.
어느날 하루는 장에 나가 고기를 사가지고 오다가 지게고리에 달아놓고 뽕나무 밭에서 변을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까마귀가 날아와 고기를 채가는 것이었다.
상심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님이 그 고기를 끓여 잡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소문이 조정은 물론 중국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 황제가 응정을 보고자 하였다.
응정은 중국 황제를 알현하게 되었다.

그런데 황제는 응정의 수저질 하는 것을 보더니 갑자기 "여봐라, 저놈을 당장 작두로 목을 베어라" 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뜻밖의 일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응정은 노모를 생각하고 울으니 황제가 그 연유를 물어 "너는 효자라고 하면서 어찌하여 왼손으로 수저질을 하느냐? 자식이 왼손으로 수저질 하는 것을 보고 부모가 그냥 있을리가 없는데, 너는 부모말을 거역하고도 효자라 하겠느냐?" 하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응정은 눈믈을 거두고 "만일 부모님께서 그 같은 말을 한번이라도 하였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니 황제는 더욱 노하면서 "그래도 저놈이 이제는 거짓말을 서슴치 않고 하느구나" 하며 노발대발하자 응정은 "내말이 진실이라면 나의 손이 대궐의 주춧돌안으로 들어갈 것이고 그렇지 않고 거짓말이라면 손이 들어가지 않을 터이니 시험하게 해주시요." 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황제가 승낙하자 응정은 대궐 마당에 청수를 떠다놓고 끓어 앉아서 "저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하며 간절히 빌은 뒤 손을 주춧돌안으로 밀어 넣으니 거짓말처럼 안으로 손이 쑥 들어가는 것이었다.
황제는 감탄하면서, "참으로 응정은 하늘이 낸 효자로다." 라고 치하하고 크게 상을 주었다고 한다.

서기 1470년(성종 1년)에 그의 효행이 지극하다 하여 벼슬을 주었으나 어머니의 봉양을 이유로 사양하였다. 그후 모친상을 당하여 시묘하였는데 그때 호랑이가 지켜 주었다고 한다.
서기 1483년(성종 14년)에 생원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으로 김용석, 신종호, 박연등과 함께 향악을 만들고 소학을 강론하였다.
뒤에 성종이 친필로 쓴 현판을 하사하시어 정려를 세우고 가야곡의 효암서원에 주향하였는데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우암 송시열이 상소하여 복원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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