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의미 효행이야기
 
효행이야기, 이규호(李圭鎬)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7.12.20 조회: 2880

 

불철주야로 부친을 간호한 이규호

선생의 자는 순조(舜助)요, 달옹(達翁)은 호이다.

일찍이 선생의 부친이신 이권영(李權榮)님은 나라가 위기에 처함을 보고 멀리 러시아령의 연해주를 비롯 만주의 길림, 북간도 등지를 주유하면서 훗일의 대계를 위하여 인재를 배양하며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이역만리에서 보내고 있었다.

선생이 29세 되던 해 부친께서 함경남도 갑산에 계시다는 기별을 받고 수천리 길을 도보로 산 넘고 물 건너 가서 27일만에 만나 뵈었다. 선생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부친을 모시고 귀향코자 하였으나 부친의 구국일념의 뜻이 확고불변하여 선생은 홀로 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선생은 32세 되던 1893년 겨울에 부친이 위독하다는 것을 꿈에 보고 황급히 갑산행을 하였더니 때는 엄동의 계절이요 북극의 한파가 몰아 붙이는 우리나라 동북단 지역인지라 발톱은 버선에 얼어붙어서 빠지고 동상은 점점 악화되어 심한 고통이 따르고 심지어는 발 다리를 절단할 위험이 임박하자 감나무에 결박하고 벌겋게 달구어진 쇠붙이로 지지는 등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었다.

그 때 과연 꿈에 본 것처럼 부친의 병환이 위중하신 지라 선생이 신명을 대신하기로 하늘에 기도 드릴 때 정수를 모신 주발이 터지는 혹한의 밤에도 철야로 지성을 다하였으며 하늘도 무심히 여기지 않아 드디어 부친의 병환이 회복되었다.

부친을 모시고 돌아오려고 간청하였으나 역시 부친의 뜻이 완강하여 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후 48세가 되던 기유년에 부친의 병이 또 악화되어 병세가 위급하신지라 선생은 주야를 가리지 않고 병세를 살피면서 약을 해 드리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부친께서는 수개월 더 연명하였으나 마침내는 운명하고 말았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임시장례로 치르고 훗날 부친의 체백이 행여나 소홀히 될까 염려하여 고향에 정성껏 모시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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