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의미 효행이야기
 
효행이야기, 출천의 대효 성송국(成松國)의 효행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7.12.20 조회: 2584

 

출천의 대효 성송국(成松國)

성송국(成松國) 은 고려 말기의 사람으로서 창녕 미흘여 (지금의 창녕읍 말흘리)에 살았으며 그의 부친은 성 인보인데 중윤호장이라는 지방 관직을 맡아 있었다. 이 호장이라는 관직은 신라 때부터 있었으며 그 지방의 주인으로서 강한 권력을 가졌으며 토지와 인민을 갖고 있었고 국가에는 세금을 바쳐왔다.

이러한 직무에 따라 해마다 몇 차례씩 고려 서울 송경의 조정에 올라 가는데 어느 때 그의 부친이 송경에서 병사 하였다는 급한 소식이 왔다. 뜻밖의 슬픈 소식에 그는 급히 상경하여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기절하는 상태에 까지 이르렀으니 보는 사람마다 그 효성에 감동하여 모두 눈물을 지었다 한다.

그리하여 고향으로 돌아 올 차림을 차리니 시체를 상여로서 운반할 수는 있지만 '내가 지고 가야 아버가 돌아가실 때에 모시지 못한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겠다.'고 몸소 부친의 시체를 지게에 지고 송경 남문을 나와 찬바람을 무릎쓰고 걸어서 창녕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빨리 오기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도 하루 한번 밖에 쉬지 않았으며 보통 혼자 몸으로 십여일이 걸리는 먼 길인데 더구나 시체를 지고가는 걸음이라 빨리 걷지 못하여 더욱 여러 날이 걸려 겨우 지금의 현풍땅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그곳에서 밤을 세우게 되었다.

창녕까지는 앞으로 약 삼십리이므로 일찍 닿을 수 있는 거리이나 그 날 따라 출발할 때부터 퍼붓는 눈으로 길을 찾지 못할 지경에 이러렀다. 온갖 고생끝에 간신히 청산원에 이르니 날이 저물어 할 수 없이 청산원집 마루에 시체를 내려 놓고 슬픔에 잠겼다.

밤새 눈이 계속하여 내렸는데 날이 새고 보니 이상하게도 발자욱이 시체를 두르고 문밖으로 나갔으므로 그는 놀라서 주위를 살펴보니 시체는 여전히 그대로 있고 범의 발자욱은 온 흔적이 없으나 둘러보고 나간 흔적은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그는 이상히 여겨 그 범 발자욱을 따라 산을 넘고 들을 건너 조그만한 뚝뫼에 이르러니 범의 발자욱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장사 지낼만한 땅에 많이 쌓였던 눈은 녹아버리고 파란 잔디만 보였다.

그는 매우 괴이하게 여겨 그곳에 표가 나도록 나무를 꽂아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날을 받아 그곳에다 장사 지냈다. 그의 지극한 효성으로 범이 지시하여 준 맥산에 부친을 장사한후 그는 벼슬이 문화시중에 이르렀고 그의 자손들은 충신 효성과 문장, 도덕, 절의등에 뛰어난 인물들이 계속하여 나왔다.

근세 조선 제21대 영조 6년에 맥산뒤에 물계서원을 세워 이 어른을 모시고 그의 후손중 18명의 훌륭한 분들을 같이 모시게 하여 춘추로 제사를 드리어 그의 효성을 기린다.
출처 : http;//home.megapa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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