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의미 효행이야기
 
효행이야기, 효천 박진한의 효행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7.12.20 조회: 2543

효천 박진한

효천은 호이며 근세조선 제 19대 숙종때의 사람이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독학을 하면서 모친을 극진히 섬겼다. 진한이 중년에 이르러 그의 모친이 중병에 들어 한창 추운 겨울에 잉어를 원하므로 잉어를 구하러 강가에 가보니 강은 꽁꽁 얼어 붙어 도무지 잉어를 구할 수가 없었다.

홀로 강가에서 애태우며 안타까워 하다가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큰 소리로 울부짖으니 대자연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였는지 갑짜기 얼음이 깨어지더니 뜻밖에도 커다란 잉어가 펄쩍 뛰어 나왔으므로 급히 가져와서 모친께 드렸더니 중병이 그만 나았다고 한다.

이 사실이 가까이는 물론 멀리까지 알려져 '하늘이 낳은 효자'라고 모두들 칭찬하였다 한다. 진한은 충성심도 지극하여 그가 52세때에 숙종임금이 돌아가셨는데 매우 애통해 하면서 자기 부모상과 같이 짚자리를 펴놓고 단정히 앉아 3일동안 음식을 피하였다 하며, 또 안산(지금 대합면 소야리 앞산)에 정성들여 제단을 만들고 삼년 동안 매월 초하루나 보름엔 꼭 깨끗한 샘물을 떠 놓고 향불을 피우고 슬피 곡을 하며 제례를 갖추었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번도 빠짐없이 계속 하였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효심은 더욱 지극하여 61세때에는 그의 모친의 병환이 매우 중하니 매일 세번씩 하느님께 기도하며 빌기를 '내 몸으로서 대신 아프게 해 달라고 하였다.'하며, 잠시라도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대변의 맛을 보아가며 백방으로 간호하고 치로하였으나 차도가 없고 기어코 운명 할 단계에 이르니 그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그 피를 모친의 입에 흘러내리게 하여 수일간을 더 살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온갖 정성을 다한 보람도 없이 돌아가셨으므로 그는 이방면 지곡동 (치신)뒷산에 장사 지내고 어머님 살아계실때 못다한 효도를 안타까이 여기며 묘옆에 여막을 지어 묘를 지키며 음식이라고는 아침 저녁으로 보릿가루 두 숫갈을 물에 타서 먹고 명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근처의 땅이 하도 토박하여 물을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하루는 우연히 한곳에서 물이 갑자기 솟아 났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하늘이 그의 효성에 감탄하여 물이 솟아나게 했다고 하며 그의 호를 '효천' 즉 '효자의 샘'이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괴이한 일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 중 몇가지만 적어보면 하루 밤에는 여막안 제상위에 차려놓은 제물들을 여우가 와서 훔쳐먹고 몇 발자국 가다가 그만 저절로 죽어 있었다 한다.

또 호랑이가 와서 밤마다 그를 지켜주어 삼년간을 탈없이 지냈다하며 하루 밤에는 도둑들이 들어와 여막을 마구 뒤졌으나 아무것도 가져갈 만한 것이 없었는데 진한이 조용히 일어나 말하기를 '밤에 이곳에 온 뜻을 알겟다'하면서 입고있던 옷을 벗어주니 도둑이 이상히 여기며 가져갔으나 밤 새도록 가도 몇 발자국을 못가고 날이새니 도둑은 부끄러운 마음에서 되돌아와 자기들의 잘못을 빌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에 어사 박 문수가 이 지방에 내려와 이와같은 사실을 알고 세번이나 여막에 찾아와 칭찬하고 진심으로 존경하였다 하며 이런 사실을 영조 임금님께 상소하니 '사헌부 지평'이라는 벼슬을 내렸으며 영조 임술년 (1742) 나이 74세로 일생을 마쳤다.
출처 : http;//home.megapa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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