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의 의미 효행이야기
 
효행이야기, 이지남의 효행
글쓴이: 관리자
등록일: 2007.12.20 조회: 2877

이지남의 효성

선조때 학자.
자는 단례. 본관은 연안. 양주군 진건면 신월리. 사헌부장령 이언침의 자. 홍문관박사 안한영의 외손. 효자 기직·기설의 부. 하서 김인후·이소제·이중호의 문하.

1545년(인종1)부친이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순창군수로 좌천되자 부친을 호종하였다. 6세부터 학문에 전념하였고 특히 소학의 가르침을 본받아 성효를 실천하였다. 순창에서 하서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여 칭송을 받았다.

부친이 순창에서 서천으로 유배되던 중 병으로 돌아감에 부음을 듣고 식음을 전폐한채 달려가 반구하였다. 부친의 시신을 운구하여 향리에 돌아오자 친지들조차 시사에 저촉될 것을 두려워하여 안장하는 것을 외면하였으나 스스로 전토를 처분하여 부관에 필요한 물품을 장만하였다. 거상하는데 있어서는 토석을 운반하였고 여막을 짓고 3년을 시묘하며 조석으로 호곡하고 읍혈함에 사초마저 말라 죽었다.

1572년(선조5) 학행이 높고 지조가 있는 선비를 천거하라는 왕명에 천거되어 소격 서참봉을 제수받았다. 한편 모친 광능안씨가 가화를 당한 이래 항시 불안해하자 대사가 아니면 시측하며 자녀들과 더불어 고금경사를 강론하여 모친의 시름을 잊게 하였다.

1577년(선조 10) 모친이 이질로 구로하자 모든 약이를 구하여 시탕하였고 대변의 맛을 보아 병세를 가늠하였으며 주야로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호읍하여 대신 죽기를 기원하였다. 이에 하늘도 감복하여 꿈에 신인을 보내어 ‘효성에 감복하여 모친의 운명을 대신케 한다’고 하고 사라짐에 모친의 병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자신은 오랜기간의 시병으로 몸을 상하여 병으로 죽었다. 근동노인들은 이를 칭송하여 연안의 옛지명인 영응을 본따 영응선생이라 하였다. 조정에서는 효행을 접하고 효자정려의 홍은을 하사하였는데, 신월리에 아들 기직의 정문과 함께 보존되어 있다.
글출처 : 파주도서관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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