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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꾸고픈 꿈(동화)
글쓴이: 청포도
등록일: 2012.04.03 조회: 1139

다시 꾸고픈 꿈

 

몇 시간이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온통 어둠뿐인 곳에 나 홀로 앉아있습니다.
오늘도 소파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나봅니다.
하지만 나는 별로 슬프거나, 무섭지 않습니다. 늘 겪는 일이니까요.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서 보냅니다.
그래서 어두운 것 정도는 별로 무섭지 않죠.
하지만 이렇게 한 밤중에 잠에서 깨어날 때면 조금 쓸쓸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면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간절히 소원해보지지만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어요.


의자에서 부스스 일어나 전등의 불을 켭니다.
방은 잠들기 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마치 얼음조각처럼 냉기만 내뿜는 방 안에서
변화란 생각할 수도 없죠.
‘방이 조금이라도 달라져있으면 잠에서 깨어나도 덜 쓸쓸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내 옆에 있는 작은 서랍장들이 말을 겁니다.
“잘 잤니?”
“으응”
‘이렇게 놀라울 수가!’
하지만 내가 놀란 이유는 작은 서랍장이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말을 하는 서랍장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저의 모습을 보고 놀란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말하는 서랍장을 보고 놀라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저 서랍장은 보통 서랍장이 아니거든요.
엄마가 죽기 전 나에게 남긴 유일한 물건이니까요.
저 서랍장에는 엄마의 추억이 가득합니다.
엄마가 태어날 때, 외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로 만든 물건이라 그런지
엄마는 틈날 때마다 서랍장을 닦고, 또 닦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 서랍장은 아직도 새것처럼 빛납니다.
저 아름다운 나뭇결을 보고 있으면 꼭 엄마의 머릿결을 보는 것 같아
나도 틈만 나면 엄마처럼 서랍장을 닦습니다.
“너 심심하지”
역시 저 서랍장은 나를 너무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입니다.
“그럼, 내가 친구 한 명 소개시켜줄까?”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순간 서랍장 안에서 나와 똑같이 생기고, 크기가 엄지손가락만한 난장이가
조심스레 기어 나옵니다.
“안녕! 넌 누구니?”
나는 반갑게 인사합니다.
사실 서랍장하고 대화하는 것보다는 엄지난장이하고 대화하는 편이 낫습니다.
게다가 저와 똑같이 생겼으니까요.
하지만 난장이는 나의 질문에는 대꾸 없이 조용히 창밖으로 나갑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창밖으로 나가는 엄지난장이를 따릅니다.


창을 넘자, 하늘까지 닿은 계단이 보입니다.
계단은 엄마가 즐겨입던 실크드레스처럼 보들보들하고, 연한 빛을 내뿜습니다.
게다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기분 좋게 흔들려서
꼭 요람을 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구름 위를 걷는 느낌으로 계속 걸어 올라가자
드디어 계단의 끝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끝을 계단과는 달리 너무 어둡고 조용해서
왠지 좀 무서운 기분이 듭니다.
“너 무섭니?”
엄지난장이가 걱정스럽게 묻습니다.
하지만 난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어요.
엄마는 내가 겁쟁이가 되면 안 된다고 늘 말씀하셨거든요.
“아니, 전혀 무섭지 않아.”
나는 애써 겁먹지 않은 척하며 남은 계단을 오릅니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주위의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게다가 그 안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손을 그 안으로 밀어 넣어봅니다.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손을 넣은 것처럼 차가움을 느낍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부터는 네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어.”
“어디든지? 그럼 엄마를 만날 수도 있는 거야?”
난장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엄마를 볼 수도 있다는 난장이의 대답에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허공을 뚫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눈물이 쏟아져 내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울 수는 없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엄마는 나에게 실망할 지도 모르거든요.
눈물을 꾹 참고 앞으로 걸어 나가자 눈앞에는 어지러운 미로가 펼쳐집니다.
온갖 이상한 암호들로 가득 찬 미로가 말이죠.
나는 미로 속에 한 발을 들여 놓습니다.
진흙처럼 질퍽거려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런 것쯤은 견뎌낼 수 있습니다.
나는 아슬아슬한 미로 속을 계속 걷습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공기는 점점 차가워지고, 길은 더욱 험해집니다.
‘정말 이런 곳에 엄마가 있을까?’
‘난장이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닐까?’
걱정스런 마음이 들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자 공기가 너무 차가워져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진흙에 빠진 발은 두 손으로 잡아끌어야 겨우 빠질 정도로 깊어졌습니다.
결국 너무 힘들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맙니다.


그 순간,
저 멀리 달빛보다 더욱 빛나는 엄마의 머리칼이 보입니다.
‘엄마, 엄마.’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나는 있는 힘껏 엄마를 향해 달립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만은 않습니다.
앞으로 내달릴수록 진흙은 점점 깊어집니다.
이제는 늪지처럼 온 몸을 빨아드리는 것 같습니다.
“안 돼! 안 돼!”


얼마나 울었을까…….
눈을 떠보니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엄지난장이도 없고, 서랍장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서랍장아.’ 하고 불러볼까도 생각해보지만
쓸데없는 짓인 것 같아 곧 생각을 접습니다.
이건 분명히 꿈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꿈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아쉽습니다.
내 키가 10센티만 더 컸어도 진흙을 뚫고
정말로 엄마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10센티가 크려면 얼마나 걸릴까.’
10센티가 더 클때까지 엄마가 그 춥고 어두운 곳에서
나를 기다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창 밖에서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햇빛을 받은 서랍장의 나뭇결은 보석처럼 빛납니다.
꼭 금방 머리를 감고 나온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봅니다.
태양에 비친 내 그림자가 오늘따라 더욱 쓸쓸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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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동화작가가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마지막으로 그 꿈은 접었지요.
주위 사람들이 어떤 엄마도 제 글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을 거라고 해서...
아마 맞는 이야기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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