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사랑 문예광장
 
20평 짜리 행복가게
글쓴이: 청포도
등록일: 2012.04.03 조회: 1374
20평 짜리 행복가게


화창한 어느 날 오후, 나는 어김없이 지하철 3호선을 탔다.
그리고 그 날도 역시 전동차 내에서 물건을 파는 잡상인이
통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일을 겪던 터라 나는 그에게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 날 학교에서 빌린 소설을 읽는 데에 열중했다.
하지만 그는 여느 잡상인과는 달랐다.
그가 건넨 첫 마디에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나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승객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모두 아시다시피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행위는
경범죄 처벌법 1조 26항인 인근소란 죄로
3만 원의 범칙금을 부과 받을 수 있고,
철도법 제89조 위반으로 5만 원 이하의 과태료나 3개월 이하의 징역,
상습범일 경우에는 형사입건도 될 수 있는 위법행위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에 앞서 모든 헌법의 기본 정신인
행복추구권을 행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고,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가 판매하는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그리 관심을 끌만한 물건이 아닌, 네 개가 한 세트로 된 칫솔인데도 말이다.
물건을 모두 판매한 후에도 그는 여유를 잃지 않고,
사람들에게 행복한 하루가 되라는 말까지 남긴 채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한참을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 지켜보던 나는 결국 용기를 내어 그의 뒤를 따랐다.
그 당시 나는 대학에서 방송구성이라는 과목을 듣고 있었는데,
그의 이야기로 5분 남짓의 짤막한 방송기획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곧 돈인 바쁜 그이지만 예상외로 그는 나의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허락했다.
나는 그가 어떻게 그런 독특한 멘트를 통한 상술을 생각해냈는지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나의 질문에 그가 꺼낸 얘기는 단순한 상술 그 이상이었다.
그는 실제로 법대생인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법대 중퇴생이었다.
그는 빠르지만 정확한 어투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그 후 홀어머니와 함께 단 둘이 살며 힘들게 공부를 해서
비록 지방대이기는 하지만 법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좋지 않은 몸을 이끌고 열심히 일을 해서 그의 등록금을 마련하였고,
그는 미안함을 대신하기 위해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여 장학금도 탔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던 행복은 어머니의 병으로 인해
2년도 채 못 되어서 끝나고 말았다.
평소 고혈압을 앓던 어머니가 과로로 쓰러져서 몸 절반의 통제력을 잃고 만 것이다.
어머니가 쓰러지신 후 그는 학교생활을 모두 접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왔지만
당장의 생계가 걱정이었다.
공부를 하던 학생에서 하루아침에 한 가정의 가장이 된 것이다.
그렇게 생활전선에 뛰어든 그는 처음부터 수많은 난관을 겪었다고 한다.
아무 기술 없이 줄곧 공부만 해온 대학중퇴생을 달갑게 여기는 직장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렵게 구한 직장도 어머니의 병간호 때문에
지각과 조퇴, 결근을 자주 할 수밖에 없던 터라
그마저도 오래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지하철 행상이었다.
지하철 행상은 불법이고, 수익도 일정치 않지만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돈을 벌수도 있고,
오전 10시 30분에서 1시 30분, 오후 3시 30분에서 5시까지만 일을 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어머니와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함께 할 수 있고,
병 수발을 들기에도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지하철 행상이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먼저 지하철 행상을 시작한 선배를 따라다니며
판매 기술을 열심히 익혔지만, 처음 나선 장사에서 그는
참담한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다.
단 한번의 장사 경험도 없던 그에게 있어
몇몇 승객의 차갑고, 경멸하는 듯한 눈초리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자신이 더듬거리며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대다수의 승객들을 보면 온 몸의 힘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걸음은 흠뻑 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워져만 갔다고 한다.
하지만 집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법률용어의 사용이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기 위해서는 독특한 멘트가 필요하고,
비록 학교를 중퇴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법률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그의 멘트에 사람들의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의 일일 매출은 갈수록 증가하였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한 지금은 어머니의 약 값과 생활비를 대고도
조금의 돈이 남아 저축까지 한다며 그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괜한 미안함에 구름을 머금은 것처럼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오히려 그가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혹시 제가 불쌍해보여서 그러세요?
아니요, 전 행복해요.
이 전동차 한 칸이 20평정도 되는데요,
여름엔 시원하죠, 겨울엔 따뜻하죠,
그리고 가격도 10억이 넘는다고요.”

이렇게 말하면서 웃는 그를 보고 나는 더욱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렇게 그의 20평짜리 가게에서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고 한참이 지나도록 그의 이야기가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당시 나는 우리 집이 남들처럼 부유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방학 때 해외로 여행을 다니고, 디카나 MP3, 최신형 휴대폰을 가진 친구들을
늘 부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불행했었다.
비록 건강이 좋지 않으시지만, 부모님 모두 살아계시고,
학비 때문에 몸살을 앓긴 하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행복이란 대체 무엇이며,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의 답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경제적 풍요를, 다른 이는 심리적 평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그 지하철 상인처럼 극도로 빈곤한 상태에서
혹은 정신적 공황을 일으킬만한 상태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행복의 의미와 조건은 어느 누구도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를 만난 이후인 지금은 적어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조건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이기에 조금은 식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바로 ‘행복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자의 행복’이 아닌 ‘행복의 부자’ 말이다.
병든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자신보다 어린 공익근무요원들에게 쫓기며
불법적인 상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의 부자가 되는 조건인 것이다.
오늘도 지하철에는 수많은 잡상인들이
일이천 원짜리 물건을 탄탄한 담배박스에 담아 끌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필요한 혹은 앞으로 필요할 물건들을 판매한다.
물론 지하철 내에서의 상행위는 분명한 위법행위이고,
바쁘게 혹은 여유 있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여정을 방해하는
전동차의 골칫거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의 상행위가 귀찮거나 거슬리지 않는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지하철 상인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부업삼아, 혹은 재미로 그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한 집안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추구권을 행사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그들의 행복을, 그리고 그들 가족의 행복을 위해
나는 오늘도 열변을 토하는 상인 앞에서 얇은 지갑을 연다.(*)
제목
어머니 2016.01.22
아주머니, 하지만 저는 같은 실수는 다시 하지 않는 걸요! 2012.04.03
20평 짜리 행복가게 2012.04.03
농부 백화점 가다 2012.04.03
불효자의 눈물 2012.04.03